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20

도심 재개발과 교외의 신개발 도심 재개발과 교외의 신개발 도시의 주택 공급은 대체로 도심 재개발과 교외 신개발로 나뉘는데, 도심에서는 빈 땅이 별로 없거나, 있더라도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독일과 같이 도심이 심하게 파괴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열악한 주택을 허물고 새롭게 짓는 재개발사업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제2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러 국가에서는 도심 재개발과 교외의 신개발을 주택공급방식으로 채택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도심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거나 재건하는 동시에, 도시 외곽에 대규모 주거단지를 조성하거나 신도시를 건설하여 주택을 공급했습니다. 미국은 도시 재개발사업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국가로, 1941년에 『미국 도시의 재개 .. 2024. 2. 25.
주택 결핍 문제 해결 위한 대량생산 주택 결핍 문제 해결 위한 대량생산 주택 결핍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량생산이었습니다. 1920-193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주택 계획 및 생산 방법론은 이 시기에 활발히 활용되었으며, 전쟁 전에 시작된 기술의 발전은 전쟁을 거치며 성숙해져 주택 대량생산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군대에서는 규격화, 표준화, 조립식 공법 등을 적극 사용하여 각종 시설을 건설하였고, 이 방법은 전쟁이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민간 건설로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주택 건설과 관련된 여러 주체들의 협력과 기능적 분화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공공이 주택 생산의 주체였지만, 이 시기에는 공공과 민간 모두가 주택 생산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각국 정부는 세금 감면이나 저렴한 가격의 토지 공급 등 다양한 혜택을 .. 2024. 2. 25.
전쟁 직후 극심한 주택난 전쟁 직후 극심한 주택난 전쟁이 끝난 직후의 유럽은 주택 부족이라는 엄중한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각 나라마다 주택 부족의 원인은 약간씩 다르지만, 대부분은 전쟁으로 인해 주택이 대량으로 파괴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특히 영국은 전쟁 중에 약 400만 호의 주택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는데, 이는 전체 주택의 35퍼센트라는 매우 높은 비율이었습니다. 또한, 193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주택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그 후에도 주택 부족 문제가 계속되었습니다. 1951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총 100만 4,000호의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는데, 이는 전체 주택 재고의 9퍼센트에 해당하는 수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주택 상황은 이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2024. 2. 25.
변화하는 사회, 변화하는 주택 - 1945년부터 1970년대 초반 -(2) 변화하는 사회, 변화하는 주택 - 1945년부터 1970년대 초반 -(2) '혼돈의 시대'는 미국 중심의 시대였습니다. 미국은 전쟁을 치르며 엄청난 양의 무기를 생산했고, 전쟁 후에도 이를 산업과 연계시켜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미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한 데에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쇠퇴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1947년 8월 인도와 파키스탄을 독립시킨 영국은 연이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대다수의 식민지들을 독립시킴으로써 막강하던 대영제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그리고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독립 시켜야 했습니다. 식민지 시대가 막을 내림으로써 유럽 각국의 경제력은 대폭 축소되었고, 반면 거대한 영토와 자원을 보유한 미국은 세계 제일의 국가로 부상했습니다. 미.. 2024.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