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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빈 공공주택사업의 역사적 의미와 평가

by semo00 2024. 2. 25.

빈 공공주택사업의 역사적 의미와 평가

 

빈의 공공주택사업은 바이마르 시대 독일의 주거단지 건설과 여러 측면에서 비교되곤 합니다. 도시의 중심부나 가까운 외곽에 위치해 있어서 접근성 측면에서 이점을 가졌고, 이 때문에 거주자들의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이는 접근성이 떨어졌던 독일의 주거단지들과는 크게 다른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건축적인 측면에서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습니다. 논리적이고 통일된 계획 개념이 결여되었고, 건축기술에 진보성이 없었으며, 내부의 공간구성도 혁신적이지 못했습니다. 빈의 모델은 기존의 도시조직에 순응하며 지역의 역사와 전통에서 파생된 장식과 모티프를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도시공간''새로운 미학'이 주류를 이루던 독일과 네덜란드의 주택건설사업과 비교했을 때 건축유형과 건축기술의 측면에서 '되돌아간'이라는 평가가 뒤따랐습니다.

 

이런 이유로 빈의 공공주택은 한동안 역사의 평가에서 소외되거나 폄하되었습니다. 근대건축의 물결 속에서 빈의 집합주택은 '이단적이고 '절충적'인 모델로 평가되었던 것입니다. 근대건축의 이론적 전도사를 자처했던 지그프리트 기디온은 자신의 대표작 공간, 시간, 건축 (1959)에서 빈의 공공주택에 대해서는 한 줄도 다루지 않았습니다. 존재 자체를 완전히 무시해 버린 것입니다. 또한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는 소련을 적대시하는 정치적 배경 때문에 빈의 모델을 계속해서 평가 절하했습니다. 건축적 내용보다 정치적 배경이 더욱 부각된 것입니다. 미국의 건축비평가 헨리 러셀 히치콕건축: 십구세기와 이십 세기(1958)에서 빈의 공공주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처음부터 그것의 의미는 건축적 측면보다 정치사회적 측면에 있었다. 더욱이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 건축 혁명이 발생한 시점에 새로운 세대가 아닌 건축가들에 의해서 예기치 않게 지어진 것이었다." 이같은 부정적인 평가는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좌파 이론가인 레오나르도 베네볼로는 빈의 공공주택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표명하긴 했지만 주로 당시에 썼던 자금조달 방법이나 다양한 공공시설 등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역시 건축적 내용에 대해서는 냉담했는데 건물 자체는 ''바 그 너 적인 상징주의'를 개념으로 했으므로 주목할 만 하지만, 형태는 원리가 없고 표피적이고 '현실도피적' 성향의 절충적인 건축에 불과하다고 비하했습니다. 근대건축국제회의는 추상적 기계미학과 생산적 기능주의를 표방했는데, 그들의 논리와 어긋나는 건축적 조류를 이단시했던 유럽과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빈의 공공주택을 바라보는 시각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입니다.

빈의 공공주택에 대한 평가는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근대건축의 추상미학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과 함께 바그너 학파에 대한 재평가와 맥을 같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 맥락주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건축 형태에 대한 역사적 연속성이 강조되면서 과거에 폐하 되었던 바그너의 건축이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1970년대 이후에는 미국에서도 빈의 '호프'를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였습니다. 빈센트 스컬리는 호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1974년 카를 마르크스 효포의 이미지를 표지로 사용한 근대건축의 개정판을 출간하면서 빈의 공공주택을 다루었습니다. 빈의 호프를 바그너의 이론과 연계시키며 처음으로 근대건축의 역사에 포함시켰습니다. 이후부터 미국에서 출간되는 근대건축의 개서에 빈의 호프가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윌리엄 커티스는 1900년 이후의 근대건축(1982)에서 빈의 공공주택을 독일과 네덜란드의 1920년대 집합주택들과 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책에서 1920년대 집합주택 계획들을 다루면서 빈에 대해 논의하지 않으면 불완전하다고 규정하였습니다. 빈의 공공주택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사람은 이탈리아의 비평가 만프레도 타푸리였습니다. 타푸리는 카를 마르크스 호프가 지니는 '서사시적 융대함'을 찬양하며 독자적이고, 상징적 통일감을 지니면서 도시의 맥락에 대립적 자세로 당당하게 서 있는 건물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또한 (건축가) 엔은 두 세계대전 사이의 유럽의 도시문화에 있어서 위대한 건축적 장편소설을 창출해냈다고 쓰였습니다. 그렇지만 붉은 빈의 공공주택사업 전반에 대해서는 자기도취적이고, 시대착오적이며, 무기력한 사업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으며 붉은 빈의 건물들은 유형학적 측면에서 절망적인 퇴보성을 보인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비록 건물들은 기존의 도시조직 속에 들어섰지만 도시로부터 닫혀 있고 내부화되어서 통제가 불가능한 고립된 집단주거지로 존재한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이러한 타푸리의 평가에는 197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근대건축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구시대의 끝자락에서 바라본 집합주택에 대한 인식인 것입니다. 건축을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건축유형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빈의 호프들은 전통과 문화를 바탕으로 계획된 단지들입니다. 역사도시 빈은 성벽, 성문, 주거블록, 아케이드, 중정, 발코니, 테라스로 이루어진 도시로, 호프들은 이러한 건축언어들을 충실하게 담고 있습니다. 또한 빈의 호프들은 도시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지만 결코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시의 혼잡으로부터 적절하게 분리되어 안전하고 아늑한 '도시의 오아시스'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 참조서적 : 손세관, 이십세기 집합주택 근대 공동주거 백 년의 역사, 열화당,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