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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도심 재개발과 교외의 신개발

by semo00 2024. 2. 25.

도심 재개발과 교외의 신개발

 

도시의 주택 공급은 대체로 도심 재개발과 교외 신개발로 나뉘는데, 도심에서는 빈 땅이 별로 없거나, 있더라도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독일과 같이 도심이 심하게 파괴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열악한 주택을 허물고 새롭게 짓는 재개발사업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제2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러 국가에서는 도심 재개발과 교외의 신개발을 주택공급방식으로 채택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도심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거나 재건하는 동시에, 도시 외곽에 대규모 주거단지를 조성하거나 신도시를 건설하여 주택을 공급했습니다.

 

미국은 도시 재개발사업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국가로, 1941년에 미국 도시의 재개 발에 관한 핸드북을 발간하고 도시의 슬럼에 집중하였습니다. 이후, 연방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 토지 가격을 낮추기 위해 특정 기관에 토지수용권을 위임하는 방안 등이 제안되었고, 1949년에 제정된 연방주택법은 미국 정부가 처음으로 주거복지를 직접 시행했다는 측면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이 법안을 바탕으로 미국에서는 공공이 직접, 또는 민간에게 권한을 위임하여 재개발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서민들이 모여 사는 넓은 주거지역을 '슬럼'으로 규정하고, 대신 고층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이러한 방식은 뉴욕을 시작으로 시카고, 보스턴, 세인트루이스 등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이 중 보스턴의 사례를 들면, 1957년에 설립된 보스턴 재개발국이 1958년부터 1959년 사이에 웨스트엔드 지구를 완전히 철거하고, 그 자리에 중산층을 위한 고급아파트를 건설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이곳에서 결속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살던 8,000명의 이탈리아계 서민들은 갑작스럽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습니다.

 

웨스트 엔드(West End) 지구를 슬럼이라고 규정한 것은 부유한 보스턴 시민들의 시각에 따른 일이었습니다. 이 지역의 개발을 결정한 것은 1930년대 중반이었지만, 지역 공동체의 결속력이 강해 1950년대 후반에야 비로소 개발이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당국은 2,700세대가 거주하던 지역을 모두 철거한 후, 477세대만을 수용하는 다섯 동의 고층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였습니다. 원주민들이 재정 착한 것은 높은 주택 가격 때문에 불가능했고, 이러한 방식의 재개발은 이후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여성 저널리스트 제인 제이콥스는 웨스트엔드 지구와 인접한 노스 엔드(North End) 지구의 재개발을 사례로 들어, 20세기 미국의 도시 개발 방식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가하였습니다. 그녀의 책 "위대한 미국 도시의 죽음과 삶(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 (1961)은 발간 이후 전 세계 도시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 정부는 재개발의 부작용을 인정하고, 점차 정책을 수정해 나갔습니다. 1954년에 개정된 연방주택법에서는 정부의 정책이 '재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였습니다. 1961년 케네디 행정부에 의해 다시 개정된 연방주택법에서는 처음으로 저소득층의 어려운 주택 사정에 주목하고, 그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정부에서는 1965년에 주택과 도시개발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기구를 설립하였습니다. 이 기구는 장관급 하우징 앤드 어반 디벨롭먼트(Housing and Urban Development, HUD)가 수장하였고, 모든 국민이 희망하는 생활 조건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행정의 목표로 설정하였습니다. 이후 미국은 재정 지원과 권리 제공이라는 두 가지 수단을 사용해 저소득층, 장애인 및 노약자 등 소외계층의 주거 문제를 지원하고, 주거와 소유에 있어서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였습니다.

 

영국에서도 도심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미국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해럴드 윌슨 수상이 이끄는 노동당 정권이 출범하자, 1969년에 새로운 주택법을 제정하여 슬럼을 쉽게 철거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영국에서는 슬럼을 한번에 철거하는 미국식 정책 대신, 특정 지역을 조금씩 철거하고 다시 짓는 방식으로 정책을 실행하였습니다. 1970년을 전후하여 영국에서 매년 시행한 슬럼 철거는 8만에서 9만 호 정도에 불과했으므로, 도심의 주거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도심에 남은 주택이 그대로 방치되는 상태가 계속되자, 1974년 새로운 노동당 정부에서는 슬럼 철거를 중단하고, 현지 개량, 보행체계 개선, 그리고 커뮤니티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 전환은 저층 주택이 밀집한 영국 도시들에 적합하였고, 이 시기를 전후하여 시작된 '저층·고밀도' 주택의 일반화와 도시적으로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영국은 신도시 건설에 더욱 주력하였습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부터 1944년 사이에 패트릭 애버크롬비 경이 주도하여 '그레이터 런던 플랜(Greater London Plan)'을 수립하였습니다. 그는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막기 위해 런던 주변에 영구적인 그린벨트를 조성하고, 외곽에 신도시를 조성하여 인구를 계획적으로 수용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1946년에 '뉴타운법(New Town Act)'을 제정하고, 런던을 비롯한 주요 도시 주변에 수십 개의 신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이 신도시들은 인구 6만에서 20만 명 규모의 자족적인 도시였습니다.

 

이어서, 프랑스에서는 우선 대도시 주변에 대형 주거단지를 건설한 다음 신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전쟁 후 프랑스에서 건설된 대형 주거단지는 '그랑 앙상블(Grands Ensembles)'로 불려 왔습니다. '그랑 앙상블'이라는 용어는 프랑스에서 '콘크리트 시대'에 값싸게 빨리 지은 공공주택이라는 인식과 함께 '잘못된 정책의 산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인들은 그랑 앙상블이 생성된 196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를 '무지의 시대'로 보고 있습니다. 정부는 1960년대 후반부터 신도시를 건설했는데, 세르지 퐁투아즈(Cergy-Pontoise), 마른 라 발레(Marne-La-Vallee) 등 파리 근교에 건설한 5개의 신도시가 대표적입니다.

 

 

 

* 참조서적 : 손세관, 이십 세기 집합주택 근대 공동주거 백 년의 역사, 열화당,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