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환경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진 20세기에 건축가들은 새로운 개념과 전략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필자는 건축가들의 전략을 크게 7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1. 집합주택을 미학적으로 바라보기 시작
주거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건축가들이 관여하기 시작하였을 때, 그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위생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베를라허와 같이 도시를 미학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건축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변했습니다. 베를라허는 도시에서 집합주택이 도시의 미학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가 암스테르담에서 도시설계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집합주택과 도시 미학과의 관계를 강조하였습니다. 이후에 집합주택도 미학적 대상이라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2. 집합주택에 상징적, 표현적 기능을 부여
일부 건축가들은 집합주택에 표현적, 상징적 기능을 부여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표현성이 강한 집합주택을 통해 노동자들의 집단적 정체성을 향상시키고 결속력을 부여하고자 한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표현주의적인 집합주택을 통해 노동자들을 격려하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건축가들로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암스테르담 학파’의 건축가들이 있습니다. 이후에 사례에서 다루게 될, 데 클레르크가 대표적인 건축가입니다. 그는 집합주택을 사회적 예술로 보고 노동자들을 위한 장식적이고, 표현적인 집합주택을 지었습니다. 데 클레르크와 더불어서 에른스트 마이도 집합주택에서 상징적인 건물을 통해 노동자들의 삶을 대변하였습니다. 아우트는 키푸훅 주거단지에서 주변과 완전히 차별되는 백색단지를 구현하여 주민의 동류의식을 꾀했습니다. 주변과 차별화되는 백색의 단지를 통해 주민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들도록 일종의 작전을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브루노 타우트도 브리츠 주거단지에서 ‘도시의 왕관’ 빛나는 유리 탑의 실현을 통해 커뮤니티 속성을 구현하였습니다. 외곽은 성채처럼 둘러싸고 내부의 연못은 마치 오아시스의 이미지를 가집니다. 이는 사회적으로 결속된 노동자의 커뮤니티를 생성합니다. 또한 다양한 색채를 사용하여 주민들의 자긍심을 연출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3. 표준화, 대량생산, 디자인 일원화하는 방법 모색
앞서 이야기한 표현적인 성격의 집합주택은 주택 생산의 효율성과 경제성이 중요한 목표로 등장하면서 점차 밀려나게 됩니다. 비용은 낮추면서 주택 공급의 양은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주택 생산 방법이 필요하였습니다. 이러한 전략에 가장 선도적인 국가는 독일이었습니다. 건축가, 디자이너, 공장주들이 모여 독일공작연맹을 형성하고, 디자인과 공업 생산을 하나로 묶는 획기적인 생산체제를 모색하였습니다. 이들은 기계생산을 염두에 둔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주창했으며, 표준화를 강조했습니다. 르코르뷔지에는 공업화 시대에 부합하는 주거유형을 다양하게 모색하였고 ‘도미노 주택’이라는 새로운 유형을 제시하였습니다. 기둥, 바닥, 계단, 문 등을 표준화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계획하는 주거는 자동차처럼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주택의 상이었습니다.
4. 공간과 기능에 대한 합리적 접근
건축가와 이론가들은 공간과 기능에 대해 합리적 접근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가사 공간의 합리화에 눈을 돌렸습니다. 캐서린 비처와 헤리엇 비처는 여객선의 조리실에서 보이는 시설의 기능적 배열을 바탕으로 부엌에 대한 기능적 접근을 주장했습니다. 에른스트 마이도 주택에 대한 전방위적 노력을 하였습니다. 마이 사단은 주택의 평면에서부터 내부 설비 및 비품에 이르기까지 표준화를 시도했습니다. ‘새로운 주거문화’에 적합한 물건을 효율적으로 보급할 수 있는 효율적인 행정 장치를 고안합니다. 바로 프랑크푸르트 등기부라는 것인데, 오스트리아의 디자이너 마르가레테 쉬테 리호츠키가 주도하여 부엌과 욕실의 표준화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러한 표준화 작업은 현재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알렉산더 클라인은 주택 공간구성의 효율화와 합리화를 최초로 시도합니다. 인간 행위에 바탕을 둔 과학적 동선을 통해 주택의 합리적 공간구성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하고 평면을 제시하였습니다. 그가 제시한 평면은 오늘날의 아파트 단위 평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공간이 기능적으로 분리되었고, 동선은 최소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5. 최소한의 주거
20세기 초반 진보적 건축가들은 1927년 독일공작연맹의 주최로 바이센호프 주택 전시회를 열게 됩니다.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르코르뷔지에를 대표로 한 근대건축의 핵심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한 이 전시회에서는 ‘새로운 주거문화의 모델’이 전시되었습니다. 이 전시 이후에 CIAM이라 알려진 근대건축국제회의에서 ‘최소한의 주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새로운 주거문화를 전개해야 하는 사회적 시점에서 인간의 적절한 주거환경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건축가들이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최소한의 주거에 대한 기준은 건축가마다 달랐지만, 주택의 최소 면적에 대한 생각은 기본적으로 유사했습니다. 르코르뷔지에는 1인당 14㎡를 면적 기준으로 제시하였고, 에른스트 마이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주거 개혁을 할 때 적용한 면적은 이보다 작았지만 비슷한 수치였습니다.
6. 종합적인 주택 문제의 개선 시도 - 주택에 대한 인식 개선
에른스트 마이는 주택 문제에 대해 도시나 건축 계획을 포함한 주택 내부의 부엌, 화장실 등의 설비, 각종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인간 생활의 모든 공간과 시설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대책을 모색하였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프랑크푸르트 등기부를 통한 부엌과 욕실의 표준화 작업과 같은 종합적인 공간에 대한 개선을 통해 주택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또한 ‘다스 노이에 프랑크푸르트’라는 잡지를 통해 새로운 주거문화의 정착은 물론, 시대에 맞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프랑크푸르트가 새로운 도시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홍보하였습니다. 또한 라디오 방송과도 협력하여 새로운 주거개념을 소개하고, 새롭게 지어지는 단지에 대해 알리고 시민교육을 시도하였습니다.
7. 커뮤니티 공간, 공공공간
미하일 브링크만은 개인과 집단의 관계,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배분 등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상을 제시하였습니다. 근대적 집합 주거의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한 20세기 초반에 공동체에 대해 ‘기능주의’ 건축가와는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브링크만은 도시의 집합주택에 대해 “혼란스러운 도시환경 속에서 거주자들은 내부적으로는 결속된 공동체를 형성하고 외부적으로는 새로운 경험과 접촉이라는 일상생활을 통해서 삶의 실존적 의미를 획득하는 장소”라고 규정하였습니다. 단지 내부에서 공간에 위계를 부여하고 영역성과 장소성을 가진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영역성을 가진 공간들을 통해 공동생활이라는 공공성과 개인 생활이라는 개별성의 조화를 꾀했습니다. 또한 개별적 주택에서 중심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통해 주민들의 사회적 만남을 강조하였습니다.
* 참조서적 : 손세관, 이십세기 집합주택 근대 공동주거 백년의 역사, 열화당,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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