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 개념의 주거단지들 - (1) 에이헨 하르트 단지(Eigen Haard Housing)

혁신적 개념의 주거단지들의 첫 번째 사례는 미헐 데 클레르크(Michel de Klerk)의 에이헨 하르트 단지(Eigen Haard Housing)입니다.

Michel de Klerk,  igen Haard Housing, 1913-15

데 클레르크는 노동자들을 위한 주거환경 개선과 노동자들을 위한 미학을 주장한 건축가입니다. 그가 계획한 단지들은 노동자를 위한 주택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표현적이고, 장식적이며, 형태와 색채의 변화가 다채로운 것이 특징입니다. 그는 기존의 노동자 주택이 지니는 이미지를 타파하고 매우 아름답게 주택 단지를 계획하였습니다. 집합주택을 위생과 기술적 합리성을 초월하는 ‘공간의 예술, 사회적 예술’로 본 것입니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주택이라는 예술품을 선사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집합주택의 미학이 도시의 미학이라고 이야기한 베를라허와는 차별되는 점이 있습니다. 베를라허는 노동자 주택이 지니는 단순성, 실용성, 도시환경의 연속성 등을 강조했지만, 데 클레르크는 개성적인 조형 작업을 통해 ‘노동자들의 궁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에이헨 하르트 집합주택 - Eigen Haard Housing _ The Ship

데 클레르크의 대표적인 단지의 사례로 암스테르담의 에이헨 하르트 집합주택이 있습니다. 이 집합주택은 그가 스파르 다머 푸르트 지구에 계획한 세 번째 집합주택입니다. 주택 협회 에이헌 하르트의 의뢰로 건설한 노동자들을 위한 임대주택입니다. ‘에이헌 하르트’는 ‘나의 집’이라는 뜻으로 데 클레르크가 추구했던 목표와 잘 맞아떨어지는 이름입니다. 데 클레르크는 이 건물을 통해 처음으로 블록 전체를 디자인하였습니다. 주택협회 에이헌 하르트는 이곳에 노동자를 위한 집합주택과 함께 부지 내에 있던 학교를 수용하고, 특이하게 우체국을 함께 지어달라고 의뢰합니다.

 

에이헌 하르트 집합주택은 파동치는 듯한 벽체, 섬세한 창, 벽돌의 줄눈 디테일 등 아주 표현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형태는 물론이고 색채, 장식, 디테일 등 정적인 요소와 동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복합체로써 다양한 건축적 요소들이 어우러져 유기적인 통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남쪽의 우체국은 삼각형 부지의 꼭짓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2층의 높이이지만 전체 건물에서 마치 배의 머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주택부는 5층의 규모로 세대별로 입구가 다르게 위치하고 있고, 전체 102호의 주택을 수용합니다. 기존의 학교를 수용하기 위해 데 클레르크는 증축 통해 학교가 전체 건물의 유기적인 일부가 되도록 끼워 넣는 방식을 사용하였습니다. 대지의 북쪽 끝에는 역동적인 곡선의 매스가 작은 광장을 둘러싸고 있고, 상부에는 뾰족한 탑이 위치합니다. 이러한 탑은 쓰임새라는 즉물적 차원을 초월하여, 미학적 상징성을 지닙니다. 이 탑은 과거를 회상하는 동시에 미래를 지향하고, 주민들의 시민 정신을 상징합니다. 또한 스파른다머부르트 지구의 시각적인 중심이자 지구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결속하는 장치입니다.

 

데 클레르크는 건물 곳곳에 다양한 무늬와 조각으로 벽체를 장식하였다. 이것은 네덜란드의 해양국가로서의 빛나는 역사를 재현한 것입니다.

데 클레르크가 이 집합주택에서 추구한 것은 노동자들의 생활 향상과 더불어 그들의 의식 고취였습니다. 가난과 고된 노동에 지친 노동자들에게 좋은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들이 집단적 정체성을 가지길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표현주의를 동원한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애국자들이었습니다. 데 클레르크는 집합주택을 통해 일련의 도덕적 행위를 한 것이고, 노동자들의 삶과 집합주택, 도시를 개발하는 행위 자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그가 계획한 집합주택은 노동자들의 자긍심이었으며, 그들의 궁전이었습니다.

 

 

* 참조서적 : 손세관, 이십 세기 집합주택 근대 공동주거 백 년의 역사, 열화당, 2016
* 이미지 출처 : The Ship Woningbouw Eigen Haard, archiweb, https://www.archiweb.cz/en/b/obytny-soubor-het-schip-woningbouw-eigen-haard